반야성이란 지명에서부터 연유되어 반월당으로 이름이 바뀐 역사성을 지닌 이름임.

고려사에 나오는 후백제 견훤과 고려 왕건과의 대구 공산전투를 재구성해 보면, 견훤을 치려고 매복해 있던 왕건은 이미 이런 정보를 입수한 견훤에 의해 처절한 패배를 맛보게 된다. 얼마나 생명이 위급했으면 자기 갑옷을 신승겸 장군에게 입히고 탈출에 성공하지만, 끈질긴 후백제의 추격으로 김락 장군까지 희생시키고서야 비로소 목숨을 지킨다. 이 과정에서 밤길을 도와 적진을 뚫고 탈출할 때 하늘 위에 떠있던 반달이 비쳐주는 빛으로 길을 더듬어 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반월당은 왕건의 목숨을 건져준 은인과도 같다.

공산 전투에서 (공산성 전투에서 (신숭겸 장군(우측에 선 이)과 태조 왕건(오른쪽에서 두 번째 앉은 이))

공산 전투에서 (공산성 전투에서 (신숭겸 장군(우측에 선 이)과 태조 왕건(오른쪽에서 두 번째 앉은 이))

지금도 그 당시의 처절한 전투를 상기해볼 수 있는 지명이 여럿 남아 있다. ‘안심’이라는 곳은 지금의 안심공업단지로 그 이름이 남아있는데, 도망치던 왕건이 이곳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안심했다는 얘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는 지명이다. 반야월이란 지명 역시 안심 부근에 있었는데, 전투를 벌인 동수 지역(지금 대구 동화사가 그 이름의 유래를 보여주고 있음)에서 반야월을 거쳐 안심 지역에 이르러서야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미지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공산_동수_전투#/media/File:Battle_of_Mt.Kongsan.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