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반월당‘이란 이름은 그 후 일제 시대 한 상점의 이름으로 대구에서 부활한다. 1936년 약전골목에서 돈을 번 차병곤(車炳坤)씨가 보현사 아래, 현재는 도로로 편입된 남산2동 926, 927번지 일대에 고급화장품, 수예품, 메리야스, 양산 등의 잡화류를 판매하는 목조2층 가게를 열었는데, 요즘으로 설명하면 백화점에 비한다. 이 가게는 당시 대구에서 한국인이 세운 최초의 백화점이었다.

고객은 당시 여학생들이 대부분이었고, 경영은 차 씨의 부인인 최소돌 씨가 맡았으나 큰 재미를 보지 못하고 1943년 경영난으로 딴 사람에게 넘겨져 ‘공신백화점’으로 상호가 바뀌었다. 그러나 해방 이후 이 백화점 역시 문을 닫았으나 ‘반월당’이란 이름은 1981년까지 그대로 남아 화려했던 명성을 증언해 주고 있다.

1934년 대구 최초로 일본인이 세운 이비시야 백화점이 동성로 제일은행 건너편에 들어선 뒤 한국인이 경영하던 최초의 백화점이었기 때문에 그 명성이 그대로 이어져 지금의 사거리 명칭의 기원이 된 것으로 보인다. 이 거리 이름은 이후 대구에 지하철이 들어서면서 그대로 그 지역의 역 이름이 되었으며, 반원당역은 대구 지하철의 1호선과 2호선이 교차되는 대구 최초의 환승역으로 명성을 떨치면서 대구에서 가장 번화한 곳으로 변했다. <대구의 재발견, 대구 신택리지 : 네이버 카페>

대구공립상업학교 실습생 방문 기념(1936. 12)

대구공립상업학교 실습생 방문 기념(1936. 12)

 


출처: http://cafe.naver.com/walkingdaeg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