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영당과 함께 한국인이 운영한 대표적인 백화점이 반월당이다. 1930년대까지도 야산 기슭이라 동네는 크게 발전하지 않았지만, 상가로서의 입지는 좋았다. 대구의 학교 대부분이 대봉동과 봉덕동 일대에 있는데다 중앙로에서 남산동으로 이어지는 신작로가 뚫리기 전이어서 학생들의 통학길은 반월당 앞 동서도로뿐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반월당은 종로와 중앙로, 수성교 가는 길, 남문시장 가는 길 등이 만나는 교통 요충지로 발전했다.

반월당도 처음에는 33제곱미터(10평) 정도의 단칸 점포로 시작했으나, 이 같은 입지 여건 덕분에 학생용품을 대규모로 취급하면서 백화점으로 성장했다. 목조 2층 건물로 확장한 반월당에서는 학생용품 외에 고급 화장품과 수예품, 내의와 양산 등 잡화를 판매했다. 그러나 이듬해 화재로 건물 전체가 전소되어 다시 짓기도 했으나 얼마 안 가 다시 화재가 나 백화점으로서의 기능을 잃었다. 그 후 재건된 반월당은 여러 개의 상점으로 분리돼 사용되다 1981년 도로 확장 공사 때 헐려 모습을 잃었다.
<매일신문, 2009. 11. 12>

대구공립상업학교 실습생 방문 기념(1936. 12)

대구공립상업학교 실습생 방문 기념(1936. 12)

1936년 12월, 반월당에서 실습을 하던 대구공립상업학교 실습생들과 기념촬영을 한고 있다. 맨 왼편이 차병곤 사장으로 추정되며 머리를 깎은 학생들은 대구공립상업학교생들이다. 사진 맨 왼편에 한자로 ‘대구공립상업학교실습생기념(1936. 12)’란 화환이 보인다. 또 바로 옆 글씨는 ‘세모대매중(歲暮大賣中)’이라는 연말 특별판매기간을 뜻하는 현수막이다. 반월당 백화점 전화번호는 1404번으로 간판 좌측에 기재되어 있다. 이외 세로로 길게 달아둔 간판에는 와이셔츠, 고급화장품이라고 쓴 글귀가 보인다.

1970년대 여러 가게로 분리된 반월당 모습

1970년대 여러 가게로 분리된 반월당 모습

건물 위쪽에 반월당이라는 이름은 보이지만, 이미 여러 가게로 분리된 모습이다. 도로 표지판에 보이는 ‘대서로’는 1968년 12월에 개통했으며, 사진 아래쪽에 보이는 택시는 포니택시 같다. 포니택시는 1974년 10월에 출시되었으므로 사진은 그 이후로 추정된다.

 

이미지출처: 네이버카페(출처불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