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월당 네거리는 대구의 번화가로 자리 잡으면서 대구 민주화의 성지로 자리 잡게 된다. 멀게는 독립운동가인 이상화 시인의 형인 이상정 장군의 운구행렬이 이곳을 지나갔으며, 1960년엔 이승만 자유당 정권의 부패에 반대하는 대구고보(현 경북고) 학생들이 반월당으로 행진함으로써 유신반대로부터 1987년 6월 항쟁까지 각종 시위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 주변의 식당이나 술집들은 자연스레 시위자들의 집결소가 되었던 것이다. 몀매시장의 곡주사, 남산1동의 은정, 행복식당 같은 경우가 유명하다.

1960년 2·28 의거 당시 대구고보 학생들은 현재 청운맨션 자리로 바뀐 학교를 빠져나와 유신학원 앞 오거리와 반월당 중앙로를 거쳐 경상감영공원에 있었던 경북도청 앞에 집결했으며, 1987년 6월 항쟁 당시 대구에서는 계산오거리 고려예식장 앞에서 최루탄 추방, 호헌 철폐 등을 외치며 시위를 벌이는 등 반월당 네거리와 동성로 런던제과 앞 등 10여곳세서 대구 시내 5개 대생 1만여 명이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이때 학생들은 밤 10시 20분쯤 반월당 네거리에서 시위 진압 차 출동한 남부경찰서장 승용차에 화염병과 돌을 던져 전소시켰으며, 시위 도중 삼덕파출소와 남산4파출소가 불에 탔고. 남산 1, 3파출소 및 동산, 중앙, 달성파출소 등 5개 파출소가 시위대의 투석으로 유리창과 사무실 집기 등이 파손되기도 하였다. 6월 항쟁은 거리에서 헌법을 바꾼 한국 민주화운동에 있어서의 기념비적 시위였다.

2 · 28 학생민주의거는 독재 정권의 횡포와 부패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일어난 대구 지역 고등학생들의 자발적 민주적 저항운동이었다

2 · 28 학생민주의거는 독재 정권의 횡포와 부패가 극에 달한 상황에서 일어난 대구 지역 고등학생들의 자발적 민주적 저항운동이었다

 

이미지출처: 2·28민주운동기념사업회 http://www.228.or.kr/minju3.html?cate=minju3